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로넬 해전 (문단 편집) === 첫 조우 === 슈페 제독은 11월 말 경 칭다오와 태평양에서 긁어모은 군함들을 이끌고 칠레 외해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슈페 제독은 영국 순양함이 이미 남미대륙 서부해안에 도착하여 작전을 수행 중 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화력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한 슈페 제독은 영국 함정과의 결전을 결심하고 이 해역에 독일 함정이 1척만 활동하는 것으로 영국이 믿도록 하기 위해 방호순양함 라이프치히 (SMS Leipzig)의 무선침묵을 해제하였다. 크래독 제독도 독일 함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치히의 무선침묵이 깨졌다는 것은 즉각 알아차렸으나, 그것이 슈페 제독의 계략임을 눈치채지는 못하였다. 슈페 제독이 판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함정]]에 빠진 크래독 제독은 주포의 열세를 우려해 구식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카노푸스 (HMS Canopus)가 빠진 상태에서는 교전하지 말라는 영국 해군성의 훈령을 무시하고 라이프치히 함이 발하는 전파를 따라 빠른 속도로 북진하였다. 그렇게 슈페 제독의 기만작전에 당한 크래독 제독에 의해 구식 전함이었던 카노푸스는 신식 함정들의 속력을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게 된다. 아래에도 나오지만 독일측 함대보다 영국측 함대가 함선이나 승조원 면에서 모두 불리한 점이 있어서 크래독 제독이 어째서 본국의 훈령까지 무시하면서 해전에 돌입했는지는 독일의 함정에 빠진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호레이쇼 넬슨]]이 활약하던 [[전열함]] 시대부터 내려오던 영국 해군의 전통인 적극적인 전투를 권장하며 불리한 상황임을 핑계로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군사법원]]에 회부되어 큰 처벌을 받은 관례에 있었다. 이게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실제로 처벌 사례도 상당했으며 형량도 중형이 떨어졌다. 덤으로 크래독 제독의 친구인 어니스트 트루브리지 (Ernest Troubridge) 제독이 당시에 적과의 교전 실패로 군법회의를 기다리는 처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실제로 크래독 제독이 출격하면서 자신이 전사했을 경우를 대비한 편지를 남겼는데 자기 친구처럼 군법회의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고 써놓을 정도였다. 따라서 본국에서의 훈령이 어떻게 떨어지건 간에 크래독 제독이 슈페 제독을 놓치기라도 하면 바로 군사재판에 끌려가서 중형을 받고 인생이 끝장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문서에서도 크래독 제독은 전투 성공 가능성이 아주 적더라도 그걸 핑계로 출격을 거부하거나 연기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이 없다고 기록된 보고가 올라올 지경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